베르사이유 레스토랑, 장미꽃 만발한

 

 

늦은 점심을 먹었더니

또 저녁을 먹자니 좀 그렇고

안 먹자니 뭔가 허전하다 때마침 남편이

멸치국수 한 그릇 말아 먹었으면 하네

그 큰살림도 혼자 척척 했는데 이젠 한밤에

국수 한 그릇 끓이는 일도 꾀가 나네

 

대학로길 베르사이유의 장미 레스토랑

남편과 내가 어섹하게 처음 선봤던 그곳

이십여 년이 지난 그 자리엔

피식 웃을 추억이 식은 찻잔으로 남아 있을 뿐

 

늦은 밤 삼천 원짜리

멸치국수 한 그릇씩 훌훌 먹고

대학로 걸으며 남편을 무심코 쳐다보니

그때 첫인상 별루였던 세상 무서운 줄 모르던

그 총각은 어디 간데없고

무거운 보따리 보따리 잔뜩 끌고 가는

딸랑딸랑 지친 누렁소 한 마리

소리 없이 걷고만 있었네